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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맑고 공기좋은 청정지역
    딸기의 본고장

    경남 거창서변마을


    원래의 음석은 거창읍 양평리 앞 냇물 복판에 높이 칠십여 척, 넓이 이백여 평의 상바위였다. 양석이 이곳에서 15리 떨어진 남상면 대산리에 있어서, 음양석이 서로 잘 조응하여 선산의 격에 맞는 명당자리로 손꼽혔다. 이 곳에 선산을 둔 신씨 가문에서는 이조 초기부터 대과급제 30여명과 관찰사와 판서, 영의정과 왕비가 배출되었다고 한다. 그러자 신씨 가문의 대흥을 시기한 승(僧)이 음석을 없애면 더욱 번창한다고 농간을 부려, 이에 넘어가 음석을 파석하자 세 마리의 학이 슬프게 울면서 하늘 높이 나니 청천백일에 내성벽력으로 천지가 진동하여 먼 곳의 양석마저 갈라졌다 한다. 이로 인하여 인지, 그 뒤로 중종반정으로 선조(先祖)가 권좌에서 참화를 당하고 신씨 왕비가 폐위되는 등 신씨 가문에 쇠운이 들었다고 한다.

    그 후로 신씨 가문은 후회와 비탄 속에서 복원의 논의를 거듭 하였지만, 이루지 못하다가 1980년 신종옥씨가 단독 출원하여 높이 36척 둘레 64척으로 석축하고, 종인들의 성금으로 답지 조경을 완성하여 400백여 년의 숙원 성취의 기쁨이 담긴 글을 비에 새겨 세우며 음석을 복원하였다.

    – 음석복원기 비석에 새겨진 시조 –

    <염원>
    학아학아 날아갔던 학아.
    구름 타고 바람 따라 다시 돌아와 푸르른 구산의 울창한 송림을
    이산이 다하도록 어루만지면 거북산 봉황들도 반겨줄 거다.
    그리고, 이 둥지에서 영원하여라.

    1981.10.29 세손 농산 종윤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