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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맑고 공기좋은 청정지역
    딸기의 본고장

    경남 거창서변마을


    원서변(元西邊) 모찔·모곡(毛谷)

    모곡마을

    서변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월천초등학교, 거창우체국서변분국, 거창읍단위농협월천분소 등이 있고, 옛 읍 외면과 월천면의 면사무소 소재지였다.

    근래 원서변마을을「모곡」·「모찔」로 부르고 있다.
    약 500년 전에 남하면 지산에서 해주오씨가 옮겨와서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마을 서남쪽 낮은 산 사이에 영산(靈山)골 · 흰비 · 선골 · 집골 · 샛골 · 밭골 · 장삿골 · 자지능골 같은 작은 골짜기가 있고, 그 사이를 넘나드는 막재 · 달성고개 같은 잿길이 있다. 마을의 서쪽에 애머리밭들, 서남쪽에 대한(大旱)들, 남쪽으로는 부치기들이 있고 동쪽에는 번답들, 동남쪽에는 굴평들 · 검은들이 있다.

    • 모선재(暴先蘭)
    마을 안에 있는 선산김씨의 재실로 세종(1443)때 거창현감을 지낸 김제남(金弟南)을 비롯한 여러 선대를 기려서 1976년에 마련한 것이다.
    • 영선재(永先爾)
    마을 북서 어귀에 있는 밀양박씨의 재실이다. 효종 때 영동에서 가북면 다바지로 옮겨 온 선조 둔와처사 박창웅(避窩處士 朴昌雄)을 비롯한 여러 선대를 기려서 세웠으며 상량문은 함종인 어철우(咸從人 魚哲愚)가 짓고 기문은 일선인 김태순(一善人 金泰淳)이 지었다.
    • 죽산재(竹山蘭)
    이 마을에 사는 봉산이씨 문중에서 그들의 시조 문정공 심은 이수(文靖公 深隱 李隨)를 기려서 세운 재실이다.
    • 덕남재(德南爾)
    마을에 사는 해주오씨의 재실이다.

    동변(東邊)마을

    동변마을

    마리 위천면을 접한 취우령에서 웅장하고 긴 정기를 타고, 동쪽으로 길게 뻗어 내려오면서 끝에 맺히는 곳, 읍에서 김천행 국도를 따라가면 서변교를 건너 좌회전하여 4.5k 지점 오른편에 V자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마을 앞으로 모곡천의 맑은 물과 느티나무가, 뒤로는 늘 푸른 대밭이 마을을 에워싸고 있는 해발 210m의 살기 좋은 마을로 보는 사람마다 그 어우러진 풍치에 감탄한다.

    지난 새마을 사업의 정신이 현재까지도 변함 없이 계승·유지되어 주민 생활의 편의 도모에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현재 소방도로 개설을 추진 중이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개선으로 모범 마을로 거듭나기를 부락민은 바라고 있다.

    부락의 유래는 을 面으로 개칭하여 이조 말엽까지 지속되어 오면서 면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다해 오다가 수해 때 청사가 유실되어 서변마을로 재건(再建)되었는데, 1950년에 읍(邑)에 흡수됨으로 월천면은 소멸되고 말았다. 원 마을 이름은 모곡(못질)으로 선비의 마을로 옛적부터 전해 내려왔으나 일제 초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동변리로 설정함으로 현재 동변마을로 쓰여지고 있다.

    • 경지면적
    답 : 35ha, 전 : 15ha, 과수 : 10ha
    • 특산품
    물이 맑고 옥토가 넓어 주로 쌀, 양파, 사과, 특수작물(딸기. 수박) 등

    사지(沙旨), 사마리

    사지마을

    옛날 사마(司馬) 벼슬을 한 사람이 있었다 하여 사마리라 한다. 한말까지 음석방(陰石坊)에 속했으며 1914년 서변리(西邊里)에 속하게 되었다.

    지난 새마을 사업의 정신이 현재까지도 변함 없이 계승·유지되어 주민 생활의 편의 도모에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현재 소방도로 개설을 추진 중이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개선으로 모범 마을로 거듭나기를 부락민은 바라고 있다.

    부락의 유래는 을 面으로 개칭하여 이조 말엽까지 지속되어 오면서 면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다해 오다가 수해 때 청사가 유실되어 서변마을로 재건(再建)되었는데, 1950년에 읍(邑)에 흡수됨으로 월천면은 소멸되고 말았다. 원 마을 이름은 모곡(못질)으로 선비의 마을로 옛적부터 전해 내려왔으나 일제 초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동변리로 설정함으로 현재 동변마을로 쓰여지고 있다.

    • 새보들
    마을 서쪽의 논들을 말한다.
    • 찬물내기들
    마을 남쪽에 있는 논들이다. 땅이 낮아 찬물이 많이 생긴데서 유래되었다.
    • 아월천(阿月川)
    마을 동쪽을 남북으로 흐르는 내이다. 이 내는 사방이 트여 달빛을 잘 받아 땅거위가 노는 것을 밤에도 볼 수 있어 "아월천(觀月川)"이라고 하며 "아달내", "아드내"라고도 부른다.

    죽동(竹洞)마을

    죽동마을

    마리면과 경계한 소나기취(驟)자 비우(雨)자 재령(嶺)자 취우령의 정기를 받아 산 주령(主嶺) 날 끝에 자리 잡은 아늑한 마을 대죽(竹)자 고을동(洞)자 죽동마을은 거창군청으로부터 북쪽 6Km, 해발 250m 고지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의 총호수는 66호이며 세대원은 70세대로, 인구는 남자 83명 여자 90명 총 173명이 살고 있다. 경지면적은 전답 56ha(전 35ha, 답 21ha)로, 그 중 33ha가 과수원이며 주 재배 품종은 사과다.

    죽동마을의 특산품인 사과는 준 고지대의 큰 일교차로 과일의 육질이 단단하고 당도가 높아, 맛과 품질이 뛰어나 각처에서 주문이 들어오고 있다.

    앞에서 잠시 소개한 해발 795m인 취우령은 화창한 날씨에도 소나기가 자주 오고 항시 안개가 끼여 있다고 하여 취우령(驟雨嶺)이라 하며, 죽동은 왕대가 많이 생산된다는 뜻으로 죽동(竹洞)이라 불린다고 한다.

    죽동마을 곳곳엔 그마다의 유래를 지닌 유적들이 산재해 있다.
    부처님을 모신 부처개울이 있고 부처님을 모시고 살았던 곳인 노승박이 있는데, 지금도 땅을 파헤치면 옛날 기와장이 많이 발굴되고 있다. 또 마을에서 북쪽 700m 지점에는 전국 8명산에 한몫 하는 명산, 거창신씨의 종산인 거북산이 있다. 그 아래에 5암자가 띄엄띄엄 있으며, 이 마을 전설에 의하면 청연 이후백의 고조인 이말정 씨의 아들 5형제를 가르치면서 노닐던 고인돌로 전해지고 있다. 마을 서쪽 50m 지점에 있는 죽림정사는 옛날에 부처님을 모신 자리로, 현재 노스님이 주지로 사찰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마을 동쪽 500m 지점에 열부 함천이씨 열녀각이 세워져 있는데, 이것은 신창 표상욱 씨의 처로서 열행으로 고종 29년(서기1892년)에 정려가 내려져 1934년에 세워진 열녀각이다.

    • 총호수 66호, 농가 48호, 비농가 18호, 과수농가 35호

    양평마을

    양평마을

    조선시대에는 음석방(陰石坊)이라 하였으며, 양평.당동.노혜.김용(陽坪, 堂洞, 老惠, 金龍) 등 4개 마을이 있었다.

    마을 앞에 큰돌이 있어서 돌 그늘이 마을까지 이르렀는데, 그 둘을 음석(陰石)이라 하고 지명도 음석방이라 하였다. '음석 그늘 돌'이라는 것이 거널들, 가너들로 변하여 세평(細坪)이라고도 썼다.

    세종조에 거창신씨의 선조 신언(愼言)이 개화리에서 옮겨옴으로써 마을이 되었다. 조선 중기에 음석을 없애고 '그늘음'자가 좋지 못하다하여 '볕양(陽)'자로, '돌석(石)'자를 '들평(坪)'자로 바꿔서 양평이라 하였고, 조선 말까지 음석면(陰石面)의 소재지였다.

    • • 139 가구 총인원 423명 (남 : 212 명, 여 : 211 명)
    • • 경지면적 : 딸기하우스 30ha, 수도작 40ha
    • • 주요 재배 농산물 : 딸기 , 복수박, 쌀